자유게시판
가을이다. ‘게으른 놈 음력 7월에 후회한다’라는 속담이 있다.
미루고 미뤄도 심판의 시기가 어김없이 도래하고, 그 앞에서 벌벌 떠는 자신을 마주할 때에야 ‘아차’ 싶지만, 때는 이미 늦었다.
바야흐로 ‘숙살지기’의 때가 온 것이다.
숙살지기는 가을의 쌀쌀하고 매서운 기운을 말한다. 숙살지기의 ‘숙’은 성숙의 ‘숙’과는 다르다. 열매를 맺기 위해 끙끙거리며 땀을 흘리는 모습이 성숙의 ‘숙’이라면 숙살지기의 ‘숙’은 더 이상 끙끙거리지 않는다.
이제 성장과 성숙을 모두 마치고 불필요한 가지며, 잎도 모두 떨군다. 열매를 거둬들일 시간이 온 것이다.
숙살지기의 ‘숙’은 본래 ‘엄숙하다’라는 뜻을 가진 글자다. 후회가 막심해도 즉, 자신이 맺은 열매가 어떤 것이라 하더라도 그것을 다 떠안고 가는 것, 그리고 당당하게 자신이 감당해야 할 것을 받아들이는 태도가 바로 숙살의 ‘숙’이다.
그런 태도야말로 ‘엄숙하다’고 할 수 있다.
가을의 숙살지기를 온몸으로 견디고 나면, 나무든 사람이든 더욱 단단해진다. 그 힘으로 겨울을 살고 다시 봄을 열 수 있다.
나무에 매달린 열매가 여물지 못하면 땅에 떨어질 때 박살이 날 것이다. 그렇기에 열매의 껍질은 단단하기 마련이다.
고로 입추가 지난 후에 처서가 오듯이 성‘숙’한 후에야 엄‘숙’ 할 수 있다.
가을의 성숙은 그것을 받아들이는 이의 태도가 엄숙해야 비로소 가능하다. 이때에 이르러 천지가 비로소 숙연해진다.
그러니 이 기운을 타고 나 역시 엄숙해져야 할 때다.